목회칼럼

나는 할 수 있다-제 12강 나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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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날짜19-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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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강 나도 할 수 있다.

 

빌립보서 410-13 나는 할 수 있다.

( I CAN DO)

일산 더 사랑의 교회 : 김원열 목사

 

오늘은 ‘나는 할 수 있다.’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래, 나는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이 말씀은 21살의 검객 박상영이 브라질 리우올림픽 펜싱 결승전 도중 중얼거린 혼잣말입니다.

 

이처럼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던 박상영은 막판 기적과 같은 대역전극을 펼치며 금메달을 땄습니다.

 

박상영은 브라질 리우올림픽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 결승에서 헝가리의 게자 임레를 15대 14로 제치고 우승했습니다.

 

박상영의 금메달은 누구도 예상 못한 결과입니다.

 

박상영은 2피리어드까지 9대 13으로 올렸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3피리어드 시작 전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 박상영은 혼잣말로 ‘나는 할 수 있다’를 계속 중얼거렸습니다. 이 장면은 TV중계 화면에 포착됐는데요.

 

박상영의 거짓말 같은 승리는 3피리어드에서 나왔습니다.

그는 막판 5점을 내리 따내며 15대 14로 승리했습니다. 한국 남자 에페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이기도 합니다.

 

박상영이 금메달을 확정 짓자 네티즌들은 박상영의 ‘할 수 있다’ 독백 장면을 돌려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인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의 옥중(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에서 쓴 편지입니다. 바울은 편지를 통하여 로마의 옥중에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들의 도움에 대해 감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또 바울은 이 편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갖추어야 할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를 제시를 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의 기록 목적을 보면

빌립보 교인들의 헌금에 감사와 투옥된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있으며, 율법주의를 경계하고 한마음으로 연합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의 헌금에 감사를 표현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을 현대어 성경으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나에 대하여 다시 관심을 갖게 되어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합니다.

여러분이 물질로 나를 돕겠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었습니다.

내가 가난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어떤 형편에서도 스스로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가난하게 사는 법도 알고 부유하게 사는 법도 압니다. 배가 부르건 고프건 부유하게 살건 가난하게 살건 그 어떤 경우에도 스스로 만족하게 생각하는 비결을 배웠습니다.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기록한 곳은 평안했던 곳이 아니라 로마의 옥중 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의 삶에는 무언가 다름이 있습니다.

 

우리들도 바울의 이러한 삶을 본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모든 상황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2019년도 표어가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루는 2019”입니다.

 

이 말씀은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을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니다.

 

바울이 이렇게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고백과 기쁨을 고백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일까요?

 

그 비결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자족하기를 배웠습니다.

 

11절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라고 말씀을 합니다.

 

‘자족’ 이란 숙명과 체념은 항복이다. 라는 뜻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은 만족이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바울은 자신이 처한 환경이 정말 좋지 않았습니다.

 

지금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는 곳이 로마의 감옥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어떤 환경에서도 만족하고 있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우리의 생활은 어떠합니까?

 

사실 우리의 생활은 바울에 비해서 너무나 편리하고 안락해졌습니다.

먹는 것도 예전보다 잘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불만족 가운데 살아갑니다.

참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마음속에 탐욕이 생겼기 때문에 늘 만족을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어떠했습니까?

 

사도 바울은 자족의 삶을 배웠다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궁핍한 가운데서도 자족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자족한다는 것은 스스로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만족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물질이 없는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마음과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족하는 생활은 모든 성도들이 배워야 할 생활의 자세입니다.

 

염려는 탐심에서 나옵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을 가진 자는 세상의 모든 염려를 버리고 자족하며 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6장 31절에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고 교훈하셨습니다.

 

또 사도 바울은 디모데전서6장7-8에서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고 교훈했습니다.

 

또 바울이 이렇게 자족의 삶을 배울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을 합니다.

 

  1. 일체의 비결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12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사실 사도 바울의 사역은 제 1차에서 3차에 이르는 선교의 과정은 정말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풍부에 처할 때가 없었음에도 풍부에 처했다고 고백하며 빈곤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一體秘訣, the secret of being content)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것이 무엇일까? 라는 궁금 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오로지 이렇게 고백을 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다른 것이 없었습니다.

 

바울이 의지했던 그 능력은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처음부터 이것을 알았을 까요?

 

바울이 비법을 배웠다는 것을 볼 때 바울도 처음에는 자족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능력을 의지하는 생활 속에서 조금씩 단계적으로 자족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모든 삶 가운데 그리스도와 함께 함을 통하여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경지까지 성장했다는 것을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가 배운 일체의 비결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때로는 비천함과 배고픔과 궁핍함에 처할 때가 있었습니다. 배고프고 목마르고 주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일체의 비결을 깨닫고 자족의 삶을 살 수 가 있었습니다.

 

우리들이 만약 이렇게 힘들고 어려움에 처하면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짜증이 많이 납니다. 인색해집니다.

 

2019년는 여기에 믿음으로 모인 우리들은 이러한 삶을 벗어 버리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도 감사했습니다. 마음에는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때로는 풍부하고 배부르고 넉넉할 때가 있었습니다. 계속 넉넉하면 사치하고 방탕하게 됩니다. 과소비하게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때에도 사치하고 낭비하고 방탕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도 바울은 검소하고 자신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배운 일체의 비결이었습니다.

 

그러면 바울이 어떻게 일체의 비결을 배울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1. 주님의 능력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13절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말씀처럼 바울은 능력 주시는 예수님과 만남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습니다. 또 바울은 비천에 처할 때 고난을 통해서도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배웠습니다. 또 영적인 의미를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늘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또 그는 비천에 처했을 때 자신보다 더욱 비천한 사람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바울은 예수님 안에서 항상 만족하고 감사했습니다.

 

예수님 한 분으로 만족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없어도 괜찮고 있어도 그것에 마음의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삶에는 오직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했습니다.

 

우리들의 삶 가운데도 이와 같은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예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합니다.

 

그러면

우리들의 모든 삶 가운데도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어떤 어려운 환경여건에서도 낙심치 않고 자족하며 이겨나갈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삶에 위로와 힘과 도움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라고 고백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그리스도만을 의지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들의 모든 삶 가운데 예수님만을 의지할 때 우리는 현실의 모든 피곤과 낙망과 어려움을 잘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찬송가 370장 “주안에 있는 나에게 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 만 따라가리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 되었고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 되었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 만 따라가리

 

내 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 주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이 찬송처럼 우리들의 모든 삶 가운데 예수님이 함께 하신다면 우리는 늘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 찬송 (370장)의 작사자인 히윗 여사는 어떤 부랑아에게 복음을 증거 하다가 도리어 봉변을 당하여 오랜 기간 동안 병상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원수로 갚은 자로 말미암아 히윗 여사는 심각한 신앙의 도전을 받기의 이르렀습니다. 우리가 입으로 그리스도의 희생적 사랑을 이야기 하기는 쉬우나 그 희생이 직접 내게 요구 될 때에는 실로 곤혹스러운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히윗 여사는 더욱 신경이 날카로와졌을뿐만 아니라 그 가해자에 대한 증오가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화창한 봄날 병실 청소부인 흑인 여자가 찬송을 흥얼거리며 빗자루질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히윗여사는 “이봐요” 청소부 주제에 뭐가 그리 좋아서 흥얼 거려요 라며 버럭 역정을 내었습니다.

 

그 때 청소부는 “나에게 닥친 형편과 처지가 찬송으로 바뀔 수 있는 힘을 주님께서 주셨으니 즐거울 수밖에요” 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히윗 여사는 전기의 감전된 듯한 충격을 받고 이제까지의 불평과 증오로 가득 찬 나날에 대해 부끄러움을 억누르지 못하고 마음으로는 깊이 애통하며 회개의 눈물을 쏟았으며 입술로는 본 찬송시를 읊었던 것입니다.

 

회개 속에 주신 아름다운 찬송 시였던 것입니다. 그 이후부터 히윗 여사의 투병생활은 기쁨과 찬송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육체의 아픔은 제거 되었고 또한 가해자를 용서하고 사랑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완전히 건강을 회복한 히윗여사는 많은 찬송가 작시와 청소년 선도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불변 하시니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불러도 불러도 은혜스럽고 콧날이 시큰거리는 찬송이며 기쁨이 넘치는 감격스러운 찬송이다

 

어디 이것뿐입니까? 주안에서는 늘 감사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감사할 것들이 많습니다.

나를 기억하여 주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에게 조그마한 선물을 주는 사람들이 있음으로 인해서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하여 주는 사람이 있으므로 인해서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서 편지를 써주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를 위해서 전화를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에게 좋은 위로의 말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우리 속에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는 삶이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씀을 드리지만 감사의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주님의 능력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주님의 능력 가운데 있을 수 있을까요?

 

첫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9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셨던 이유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어찌 할 바를 모르던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님께 나아와 간청한 말이 "예수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신앙가운데서 막연한 바램, 희망이었습니다.

게다가 옆에 둘러서 있던 제자들도 믿음이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아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 믿음의 대상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믿음의 본질은 죄에서의 구원이고, 영생의 약속입니다.

예수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서 가장 소중하게 찾으셨던 것이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에 따라 기적을 베풀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셨었습니다.

때로는 믿지 않음을 기이히 여기시며 슬퍼하기도 하셨습니다.

믿음은 성도의 삶에 기초요, 생명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믿는데서 시작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성장합니다.

우리 인생의 전환점은 우리가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행하는 사람을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론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 앞에서!!

신행일치의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되셔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살아 움직이는 믿음입니다.

 

둘째, 기도입니다.

마가복음 9장 29절에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신 이유는 제자들이 그 부자(父子)를 만났을 때 그리고 저들의 부탁을 받았을 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6장 7절에 보면 예수님은 이미 제자들에게 귀신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사건을 만날 때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결과는 언제나 떠드는 것과 다툼 곧 변론뿐인 것입니다.

문제 해결을 바라는 자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줍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기도는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기도는 주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응답을 받습니다. 문제해결을 받습니다. 병든 자를 낫게 합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의 용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학교에서 성적이 상위권 학생들을 살펴보니까 그들은 공부의 양이 달랐습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공부하는 책의 분량이 많았습니다.

의자에 앉아서 집중하고 공부하는 시간의 양이 많았습니다.

그러니 성적이 잘 나올 수 밖에 없는 겁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강단의 말씀을 통해서 아니면 담당교역자들의 권면을 통해서

주일 성수하라, 십일조하라, 감사하라, 봉사하라, 기도하라, 새벽기도하자 등등

신앙적 권면의 말씀을 수없이 들으셨을텐데…

 

어떻게 하셨나요?

 

하루의 시간 중에 기도의 분량은 얼마나 되십니까?

내 삶에서 신앙생활이 차지하는 분량은 얼마나 됩니까?

하나님의 저울에 달아서 나의 신앙생활의 전체 성적은 얼마나 될까요?

하나님의 입장에 서서 자기 자신을 찬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샘이, 감사의 샘이, 기도의 샘이 메말라 버려서 삶의 터전이, 황무지가 되어 버리진 않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본인의 모습이 하나님 보시기에 불성실한 모습으로 보여 지지는 않았는지 하나하나 되짚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쉬지 않고 기도하심으로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라 』는 주님의 응답을 들으 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類)가 나갈 수 없느니라.

기도하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들이 예수 안에서 2019년도 인생의 멋진 주인공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린 박상영 선수처럼 여러분들도 이렇게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 나는 할 수 있어

왜 나도 바울처럼 자족의 은혜를 배웠으니

그리고 모든 삶을 이길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알았으니

 

내가 배운 것은 이것입니다.

 

나에게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매일의 삶의 환경 속에서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역사를 나타내시면서 승리하시면서 살아가시기를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소유할 수 있는 비결은 믿음과 기도임을 기억을 하시고 늘 삶 속에서 실천의 삶을 살아서 모든 일들을 주안에서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출처] 나는 할 수 있다. 선교(제 12강 나도 할 수 있다.|작성자 일산 더 사랑의 교회